![[기억의 시간]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단한 한 사람의 시간 [기억의 시간]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단한 한 사람의 시간](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2/IMG_5033-1024x768.jpeg)
역사는 한 소년의 조용한 결단에서 방향을 바꾼다.
1919년의 조선에서 학교를 떠난다는 선택은 단순한 학업 중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를 빼앗긴 교실, 정체성을 지우려는 권력의 강요에 대한 전면적 거부였다.
충남 덕산에서 태어난 한 소년은 그러한 시대의 시험대 위에 서 있었다. 조선인이 조선말을 쓰지 못하고 일본어를 따라 말하도록 강요받던 교실에서 그는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일본인임을 자처하라는 문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식민교육이 요구한 동화의 언어를 거부했다.
1919년 4월 3일 예산 고덕면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와 인한수 열사의 죽음은 그의 삶을 갈라놓은 분기점이었다. 그날 이후 교실은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부모에게 뜻을 밝히고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그것은 배움을 포기한 선택이 아니라, 배움의 목적을 다시 세운 결단이었다.
소년은 서당으로 향해 한학을 익혔다. 글이 시험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지키는 힘임을 깨달았다. 글을 몰라 아버지의 묘소조차 찾지 못하는 농부의 모습을 보며, 나라를 잃은 민족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문자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 인식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야학이 열렸고, 강습회가 시작됐다. ‘월진회’라는 이름 아래 문맹을 없애고 의식을 깨우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는 글을 가르치는 일이 곧 독립운동임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교육만으로 시대의 폭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계몽은 필요조건이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그는 행동의 무대를 넓혀 만주를 거쳐 상하이로 향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에 합류했다.
칭다오의 세탁소에서 생계를 이어가며 거사의 시기를 기다리던 그는, 생존만으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직시했다.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한 채 조국을 떠났고, ‘장부출가생불환’은 결연한 수사가 아니라 죽음의 자리까지 계산한 결단의 언어였다.
그 결단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현실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조국을 향해 말할 수 없었지만, 두 아들에게 남긴 글로 뜻을 이어갔다. 그것은 유언이 아니라 시대를 잇는 설계도였다.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조선을 위해 살아야 할 이유와 방향을 남긴 글이었다.
우리는 종종 그를 홍커우 공원의 한 순간으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시간은 그보다 앞선다. 교실을 박차고 나왔던 결단, 농부의 눈을 외면하지 않았던 연민,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들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기고 떠났던 책임의 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이 쌓여 하나의 의거를 만들었다.
1908년 덕산에서 태어난 한 소년, 본명 우의(禹儀).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 돌아오지 않았다.
스물넷의 삶으로 시대에 불을 밝히고 산화한 청년.
2025년 12월 19일, 그의 순국 93주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은 매헌(梅軒) 윤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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