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등 명작 수십편에 ‘잊지못할 존재감’ 각인
전 세계 미남의 아이콘으로 등극
마크롱 “프랑스의 기념비적 존재, 우리 삶에 큰 영향” 추모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지중해 뜨거운 태양 아래 구릿빛 몸과 조각 같은 얼굴로 요트를 몰던 세기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이 88세로 사망했다. 들롱은 이 영화를 통해 전 세계 팬의 마음을 뺏었던 미남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됐다.
그의 세 자녀는 18일(현지시간) AFP통신을 통해 알랭 들롱이 투병 끝에 이날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자녀들은 “그는 두쉬에 있는 자택에서 세 자녀와 반려견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파리 교외 소(Sceaux)에서 태어난 들롱은 아기 때부터 탁월한 외모를 뽐낸 것으로 전해진다. 만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모친이 유모차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적이 있다고 본인이 회고한 바 있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까지 매일 열 명 이상이 주변에 졸졸 쫒아다니며 그를 추종했다고 전해진다.
들롱은 부모의 이혼과 잦은 퇴학으로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던 중 17세에 프랑스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그는 1953~54년에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인 베트남 사이공 해군기지에서 무전병으로 복무하던 중 1956년 불명예 제대했다.
그 뒤에 웨이터, 시장짐꾼 등을 전전하다 칸영화제에서 세계적인 영화 제작자인 데이비드. O 셀즈닉의 눈에 띄어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프랑스 이브 알레그레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던 중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히트작 ‘태양은 가득히’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를 각색한 ‘태양은 가득히’에서 위험한 남자 ‘톰 리플리’ 역을 맡아 모두를 녹아 내리게 하는 퇴폐적 매력의 매혹적인 눈빛을 선보였다.
이후 알랭 들롱은 프랑스 영화 산업의 최전성기인 ‘누벨바그(새로운 물결)’ 시대를 이끈 대중 스타로 영화 90편에 출연하며 황금기를 가득 메웠다.
주요 언론들은 들롱을 현대 영화사에서 지울 수 없는 존재로 평가했다. AFP 통신은 “들롱은 프랑스 최고의 스크린 유혹자였다”고 규정했다.
AP 통신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영웅을 연기하든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든 들롱의 존재감은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들롱은 스타 그 이상”이라며 “프랑스의 기념비적 존재”라고 추모했다.
이어 마크롱 대통령은 “들롱은 전설적 배역들을 연기하며 전 세계를 꿈을 꾸게 했다”며 “그의 잊을 수 없는 얼굴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들롱은 다작한 배우였으나 1990년대 이후로는 스크린에서 거의 볼 수 없었고, 2017년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말년에는 영화 산업이 돈에 망가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들롱은 2003년 잡지 기고문에서 “돈, 상업성, 텔레비전이 꿈의 기계를 망가뜨렸다. 내 영화도 죽었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들롱은 2019년 뇌졸중으로 쓰려진 이후에는 쭉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의 아들은 올해 초 언론에 들롱이 림프구 암인 B세포림프종 진단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인기만큼이나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다.
들롱은 1958년 영화에 함께 출연한 독일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와 5년 간의 연애를 지속했지만 그 사이 가수 ‘니코’와의 사이에 아이를 출산한 후 로미와 결별했다. 이후 1964년 나탈리 들롱과 첫 공식적인 혼인 관계를 맺었지만 1969년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1982년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한 미레유 다르크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긴 연애를 했다.
그는 1987년부터 네덜란드의 모델 로잘리 판 브레멘과 2001년까지 약 15년 가량 동거하며 남매를 얻었고 2021년에는 히로미라는 이름의 일본인 여성과 만남을 갖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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