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국정원 요원의 요청으로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미국 검찰로부터 기소된 것과 관련, 17일 “한미 정보당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검찰이 전날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수미 테리는 10여년에 걸쳐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미슐랭급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고가의 의류와 핸드백, 연구비 등을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공소장에는 수미 테리가 미국에 상주하는 국정원 요원들로부터 접대 받고 쇼핑을 즐기는 등 여러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또한 이들 간에 주고 받은 문자와 도청 녹취록도 포함되어 있다.
수미 테리는 2019년 11월 국정원에서 파견된 워싱턴DC 한국대사관의 공사참사관으로부터 2천845달러(약 392만원) 상당의 돌체앤가바나 명품 코트와 2천950달러(약 407만원) 상당의 보테가 베네타 명품 핸드백 선물을 받았다. 며칠 뒤엔 매장에서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4천100달러(약 566만원) 상당의 크리스챤 디올 코트로 바꿔 갔다고 한다.
공소장엔 국정원 간부가 매장에서 가방을 결제하는 모습, 핸드백 구입 후 국정원 간부가 테리 연구원과 함께 매장을 떠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담겨있다. 미 검찰은 해당 국정원 간부의 신용카드 결제 내역과 매장 CCTV 화면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테리 연구원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문제의 코트와 명품백도 증거로 확보했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당시 대대적인 국정원 숙청 작업이 있었고 이에 베테랑 현장 요원 대부분을 한직으로 보내거나 퇴사시킨 영향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당시 이들을 대체해 공작에 서툰 분석관 출신들이 해외에 파견되었고 현장 활동에 미숙한 요원들이 수미 테리와의 접촉에 배정됨으로써 첩보 활동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이들이 노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윤석열 정부와 미국 바이든 행정부 사이에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공조 강화, 경제안보 협력 강화 등으로 한미관계가 순항하고 있는 시기에 불거진 이번 사안은 워싱턴의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미국 수사 당국은 한국 정보 기관이 이번 사안에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있어 앞으로 한미간의 원활한 정보 교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 첩보기관이 미국 내에서 한국의 국정원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미 당국이 유독 한국만 특정해 본보기 차원의 행동을 옮긴 것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바이든 정부가 차기 대선의 대세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급격히 기울고 있는 각국 정부에게 던지는 경고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미관계 등 정무적 고려없이 수미 테리에 대한 수사 및 기소가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미 당국과의 소통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미 정보당국이 이번 일에도 불구하고 정보 협력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국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수미 테리는 이날 보석금 50만 달러(약 6억9000만원)를 내고, 체포 당일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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