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에 “역내 평화와 안정·비핵화·납치자 문제 각각 재강조”
중국은 북핵 관련 한미일 동맹 대응 자제만 촉구
북한 위성발사 계획에도 한일은 ‘결의위반’, 중국은 ‘자제 촉구’
4년 5개월만에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북한 혹은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라는 문구가 담기지 않았다. 북한을 대하는 각 국의 확연히 다른 온도차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미중 간 패권전쟁이 심화되는 신냉전 기류 속 ‘한미일 대 북중러’ 전선이 뚜렷해지면서 중국이 그간 예외없이 동의해왔던 북한 비핵화 목표를 합의문서에 담는 데 반대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일중 3국은 27일 발표한 9차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하였다”고 밝혔다.
이는 비핵화에 대해 공통된 목소리를 냈던 역대 회담과는 달리 3국이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 가장 중요시하는 이슈에 대해 각자 목소리를 냈다는 의미이다. 각 국이 처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입장대로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역내 평화와 안정’,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일본은 ‘납치자 문제’에 대해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강조하는 ‘역내 평화와 안정’은 북한의 핵 기술 고도화가 진행중인 상황에 대해 인정하고 이를 문제삼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유지하자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이 강조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가 모두 제거되지 않으면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대 회담에서 한일중 각 국은 북한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북한 비핵화 목표를 놓고서 이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2008년 12월 1차 정상 회의 때 ‘앞으로 6자회담 등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실현을 위해 긴밀한 협의를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문구가 담긴 것을 시작으로 거의 매번 정상회의에 관련 문구가 담겼다. 최근만 봐도 2018년 5월 7차 정상회의와 2019년 12월 8차 정상회의 합의문에는 각각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와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라는 문장이 들어갔다. 합의문에 비핵화 관련 내용이 담기지 않은 것은 단 한 차례로, 2012년 5월 5차 정상회의가 유일했다.
이번에 비핵화 목표가 합의문에 명시되지 못한 데 대해 중국이 미국과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북한을 두둔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과 중국의 시각차는 정상회의 직후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계획에 대한 언급에서도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북한이 예고한 소위 위성 발사는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국제사회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만약 발사를 감행한다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강력히 그 중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리창 중국 총리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평화 안정을 추진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역내 도발을 이어가는 북한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보단 한미일 동맹이 핵무기를 빌미로 북한을 자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데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의 주요 목표의 하나가 한중간 ‘전략적 소통’ 강화에 있었던 만큼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소통 메커니즘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표나리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에는 정상회의가 정상화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비핵화 관련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성명에 담기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 있지만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 등 문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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