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4개 세력이 결국 ‘개혁신당’이란 이름 아래 통합신당을 9일 출범시켰다.
크든 작든 합당을 둘러싸고 말들이야 있겠지만 특히 지지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것은 이준석 신당이다.
강한 선명성이 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자산이었는데 이낙연 공동대표, 김용남 전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류효정 전 의원 등 도무지 버무려질 것 같지도 않은 조합 안에 합류하다보니 기존 지지자들의 실망감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지경인 듯 하다.
이준석 공동대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각을 세우고 페미니즘에 철퇴를 휘둘러 왔다. 하지만 어떻게든 소수자의 지지를 끌어들이는게 관건인 소수정당이 장애인과 페미니즘을 버릴 수 없는 노릇이니 이 공동대표의 입장도 난처할 것 같다.
당장 지난 8일 이준석 대표가 당 지도부와 함께 귀향길 시민을 환송하기 위해 수서역을 방문했을때 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찾아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정책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후 이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박 대표와 함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9일 제3지대 합당 발표가 이루어진 것이다. 통합신당 합당 발표 직전 이 대표가 전장연 대표와 차를 함께 나누며 정담을 나눈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의심쩍다.
더군다나 이낙연 신당은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를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였고 성사 일보직전까지 간 것으로 알려졌다. 배복주 전 부대표가 누구인가. 정의당 소속으로 2022년 종로구 재보궐선거 후보였으며 민주당 계열 탈당파의 신당에 합류하겠다며 정의당까지 탈당한 그녀는 바로 전장연 박경석 대표의 부인이다.
짐작하건데 각 정파 별로 모여 합당을 위한 과제를 이준석 대표에게 던졌고 그것이 장애인·페미니즘과의 화해와 사과였을 것이다. 이미 합당을 결심한 순간 류호정으로 대표되는 페미니즘 세력과의 화해는 완성되었다.
이 대표가 합당을 한 이상 공개적으로 장애인·노인·페미니즘과 각을 세우던 과거를 사과해야할텐데 분위기는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이 대표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간신히 자기 편으로 만든 일부 20·30 남성 지지 그룹의 이탈이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사과는 나중으로 미루고 지지자 달래기에 들어갔지만 효과는 별로 없는 듯 보인다.
커뮤니티에서 지지자였던 한 명은 “이준석 대표가 급작스럽게 페미니즘 노선을 타든 이낙연 대표와 손을 잡든 방송 키고 한마디 하면 그 즉시 (지지자들이) 고개 끄덕이면서 반론제기 안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라며 “이게 무엇보다 뼈아프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강하게 높였다.
또 다른 기존 지지자는 “지금 결과를 보니까 (홍준표 등) 내부 사정 잘 알만한 양반들이 저렇게 얘기하던 이유가 이해가 된다”며 “고작 한다는게 최악중에 최악인 당 상납 하기”라고 합당에 대해 평가절하했다.
급작스런 합당은 기존 당 지도부조차 당황하게 만든 것 같다.
허은아 전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눈앞 총선의 이해득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유감”이라며 “저 또한 결과를 통보받은 위치에 있던 사람으로 동지들의 마음과 같았음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또한 허 전 최고위원은 이준석 대표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현실적 가치 차이로 인한 당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며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이기인 전 개혁신당 최고위원도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문의 사과문을 발표하며 “당원과 지지 국민께서 분노하시는 것은 하물며 저희조차 통합의 기조와 과정이 분명하거나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라며 “여의도 문법에 매몰돼 무엇이 중요한지 경시한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PC주의와 페미니즘의 문제는 그저 성별갈등의 문제가 아니며 ‘자유’의 가치를 둘러싼 중차대한 전쟁이다”라며 “앞으로도 이 깃발을 치열하게 사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즉, 당장 현실로 다가온 합당은 인정하지만 기존 철학을 바꿀 경우 참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과 다름 없다.
이준석 대표의 오른팔이었던 천하람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6일째 침묵중이다. 분명 합당 발표 후 있었던 이준석 대표의 유튜브 방송을 보면 통합을 강하게 주장한 주체가 천하람 최고위원인데 정작 합당 이후 모두가 모인 자리에는 이 대표와 김용남 최고위원(현 정책위원회 공동의장)만 등장하고 있다.
어느덧 주연 이준석, 조연 천하람의 드라마는 김용남 정책위의장으로 조연이 교체되는 형국이다. 합당하며 허은아 최고위원은 수석대변인으로, 이기인 최고위원은 대변인으로 강등까지 되었으니 이들도 썩 기분이 좋을 것 같진 않다. 이들이 진정 합당의 길을 믿고 따른다면 군더더기로 보일 만한 말을 공개적으로 덧붙여 올릴 리 없다. 일단 어쩔 수 없으니 따라는 가지만 공천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자세 아닐까 싶다.
이준석 대표는 항상 나만의 길을 가겠다고 공언해왔고 국민의힘을 나오는 순간까지 자기 색깔을 단 한번도 내려 놓은 적이 없다. 또한 전문가들조차 이준석 대표가 자신의 당에 다른 세력을 흡수하는 형태는 몰라도 구차하게 합당의 형식을 취하진 않을 것이란 평이 다수였다. 아직 30대에 불과한 이 대표가 정치적 자산인 선명성을 버림으로써 정치적 생명을 갉아 먹는 결정을 할 리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왜 이준석 대표는 합당의 형식을 취했지만 남은 것은 ‘개혁신당’이란 당명 하나뿐인 길을 선택했을까.
그동안 이 대표는 국민의힘 지붕 아래 있으며 국민의힘을 비판했기에 존재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막상 나와 보니 자신이 한심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해온 전국 조직 만들기와 선거 이끌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부족한 자금과 인력을 마주하며 뼈저리게 느낀 것 같다.
더 이상 찾아주지 않는 언론, 간신히 3%를 유지한 지지율, 5만여명을 기점으로 요지부동인 당원수는 분명 그가 국민의힘을 나오며 스스로 세웠던 자기 평가를 한참 하회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쉽게 욕 먹을 것 알면서도 합당의 탈을 쓴 흡수의 길로 갔을 리 없다.
그와 윤석열 대통령, 그와 국민의힘 지도부 및 당원들과의 괴리보다 분명 그와 제3지대 세력과의 거리가 더 먼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그의 입에서 ‘통합, 화합, 연대’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모습을 기괴하게 생각하는 지지자들의 의구심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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