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 무단 침입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 3명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정치적 목적의 불법 시위에 대한 양형 기준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재판부는 범행의 계획성과 동종 범죄 전력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들의 반성과 비폭력성 등을 고려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군사시설 보호의 중요성과 반복적인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이 충분히 반영됐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법관 인사제도를 둘러싼 논쟁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개별 판결의 형량만으로 정치적 편향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려운 만큼, 유사 사건의 범행 경위와 양형 사유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5단독 김규화 판사는 전날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과 공동건조물침입 혐의로 기소된 대진연 소속 대학생 3명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 8월 4일 경기 평택시 오산공군기지(K-55)에 무단 침입해 미군 규탄 구호를 외치고 영상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대진연 회원 8명이 기지 침입을 시도했고, 이 가운데 6명이 내부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범행이 사전에 계획됐으며 법령상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동종·유사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도 인정했다.
다만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사익을 추구하지 않은 점, 특별히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은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 이에 따라 구속 상태였던 피고인 2명도 석방됐다.
이번 판결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부분은 계획적인 군사시설 침입과 동종 범행 전력이 인정됐음에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복적인 불법행위의 책임과 반성·비폭력성 등 유리한 양형 요소 사이에서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형량을 정했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이헌 법무법인 홍익 변호사는 “군사기지, 군사시설에 침입한 것이고 동종 전과도 있다고 하는데 봐주기 판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집행유예는 일단 용서해준다는 것인데 엄정하게 처벌해야 할 사안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치적 항의 목적을 양형에 참작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변호사는 “참작은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행유예 판단의 사유로 들 만한 내용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의사 표현을 목적으로 출입 제한구역에 침입한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9년 대진연 회원들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반대하며 주한 미국대사관저 담을 넘어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회원 4명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해당 판결은 2021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반면 2020년 제주해군기지 침입 사건에서는 일부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당시 철조망을 절단하고 기지에 침입한 활동가 2명 가운데 1명은 징역 2년의 실형을, 다른 1명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두 사건은 시설 침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시설 훼손 여부와 구체적인 범행 경위 등에서 차이가 있다. 선고 형량만을 비교해 법원의 판단이 일관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각 사건의 범죄 내용과 양형 사유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신념은 범행 동기를 설명하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위법성을 없애지는 않는다.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과 법률 위반에 따른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에서다.
이런 가운데 판사 출신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법관 인사제도 변화를 거론하며 사법부의 정치화를 비판한 발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나 의원은 유튜브 방송에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관 인사제도 변화를 언급하며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 굉장히 좌파들이 요구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판사들이 굉장히 이념 성향이 갈라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법원장 후보추천제 등을 문제 삼으며 사법부가 정치화됐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2019년 도입된 법원장 후보추천제는 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도록 한 제도다. 대법원장의 인사 권한을 분산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시행됐지만, 인기투표식 인사와 사법행정의 책임성 약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는 제도 운영 방식의 개선이 추진됐다.
다만 나 의원의 발언은 이번 대진연 사건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며, 법관 인사제도의 변화가 해당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도 확인되지 않았다. 특정 정치적 성향의 피고인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는 사실만으로 재판부의 정치적 편향을 단정할 수는 없다.
이 변호사는 과거부터 법관의 이념적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으며, 최근 내란죄 관련 재판 등을 계기로 사법부 정치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판결의 정치적 편향 여부에 대해서는 “판결을 봐야 하고 재판 과정도 좀 봐야 알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대진연이 내세우는 반미 등 정치적 이념이 집행유예 판단의 사유로 작용했다면 이념적 성향이 드러났다고 보여지는 측면이 없진 않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번 판결을 둘러싼 논쟁은 정치적 목적의 불법행위에 어느 정도의 형사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그리고 유사 사건에 대한 양형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