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0년 3월 26일, 한 청년이 중국 뤼순 감옥(旅順監獄) 형장으로 향했다. 그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야 할 시기,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고민이 가장 깊어지는 나이다. 그런 나이에 그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이름은 안중근. 우리는 이 이름을 익숙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익숙함이 곧 이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익숙함은 때로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래 붙잡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억은 하얼빈에서 멈춘다. 총성이 울리고, 한 인물이 쓰러지는 장면. 그 강렬한 한순간은 분명 역사적이다. 그러나 그 장면만으로 한 사람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 이후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체포된 뒤 감옥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이어졌던 생각들. 어쩌면 그 시간들이야말로 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곳에서 글을 쓰려 했다. 『동양평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흔적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저항이나 복수의 감정에 머물지 않고, 이후의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적대가 아닌 공존, 충돌이 아닌 균형. 그것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룬다 하더라도, 그는 그 가능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연해주에서의 활동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그는 싸우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모으고,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일에 시간을 쏟았다. 독립이라는 결과는 하루아침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본 것은 언제나 ‘그 이후’였다.
법정에서의 태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또박또박 설명했다. 스스로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힌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과장인지를 따지는 일보다, 그는 왜 그렇게 자신을 규정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하나의 맥락 속에서 설명하려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대한의 독립과 함께 ‘동양의 평화’를 말했다. 적을 향해 총을 겨눈 사람이 남긴 말이 평화였다는 사실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그 말이 단순한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신념이었는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는 마지막까지 그 단어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간은 많이 흘렀다. 오늘의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아니고, 생사를 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여전히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가.
아마도 남겨진 질문 때문일 것이다. 그 질문은 거창하지 않다. 힘을 가진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을 향하고 있다.
특히 오늘을 살아가는 서른두 살의 청년들에게 이 물음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야 하고, 선택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나이. 때로는 방향을 잃고, 때로는 타협을 배우며, 그렇게 조금씩 현실에 적응해 간다. 그 과정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만 한 번쯤은 멈춰 설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 솔직히 말해 이런 질문은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질문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삶의 방향을 지키는 최소한일지 모른다.
요즘의 공론장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의견의 차이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배제의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의’와 ‘평화’라는 말은 쉽게 쓰이지만, 그 말이 실제로 어떤 책임을 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한 문장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굳이 마지막 순간에 ‘평화’를 말했던 이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다면, 차라리 그대로 질문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정직할지도 모른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해진다. 몇 개의 장면과 몇 개의 단어로 축소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다시 꺼내야 할 것은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이 남겨놓은 물음일지도 모른다.
형장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질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충분히 되묻지 않았을 뿐이다. 서른두 살. 그 나이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이다.
안중근 의사의 서거 116주기인 오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서른두 살의 청년들은 과연 어떤 질문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시간은 멀어졌지만, 그가 남긴 물음까지 함께 멀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그 질문을 놓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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