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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시간] 나라를 되찾은 뒤,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 백야 김좌진 장군이
2026년 1월24일 서거 96주기에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남기는 말

[기억의 시간] 나라를 되찾은 뒤,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나는 총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언제나 총 너머에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는 적이 분명했지만,
나라를 되찾은 뒤에는 적이 늘 안쪽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나는 전쟁보다 먼저 배웠다.

나는 일본군과 싸웠지만,
그보다 더 오래 싸운 것은 권력의 유혹이었다.
강한 힘을 손에 쥐는 순간,
그 힘을 정의라 부르고 싶은 마음과
그 힘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빠르게 사람을 무너뜨리는지
나는 동지들의 얼굴에서 보았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백야’라는 이름을 붙였다.
희고 단단한 쇠,
사사로움 없이 단련된 칼.
적을 베기 위한 이름이 아니라
나 자신을 경계하기 위한 이름이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내가 살던 시대와 다르다.
너희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고,
총을 들지 않아도 말을 할 수 있으며,
감옥을 각오하지 않고도 선택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자유가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잊는다.

나는 묻고 싶다.
지금 너희가 마주한 권력은 누구를 향해 있는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인가,
국민에게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권력인가.
선의라는 이름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속도라는 이유로 책임을 건너뛰고 있지는 않은가.

권력을 쥔 이들이라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장군이었지만,
내 이름을 내세운 나라를 꿈꾸지 않았다.
지도자는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사람 위에 서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이 오래될수록,
그 권력을 내려놓는 연습을 먼저 해야 한다.
그 연습이 없는 권력은
결국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하게 된다.

정치는 명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와 자기 통제로 유지되는 일이다.
그 절제가 사라지는 순간,
나라를 위한다는 말은
가장 위험한 변명이 된다.

시민들에게도 말한다.
나는 영웅을 따르는 민중을 원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들을 원했다.
정치를 혐오하면서 동시에
모든 결정을 남에게 맡기는 태도는
자유를 지키는 방식이 아니다.

분노는 쉽고,
기억은 불편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감정이 아니라
기억 위에서만 자란다.
무엇을 선택했는지,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끝까지 돌아보는 시민만이
권력을 길들일 수 있다.

나는 해방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더 두려웠던 것은
해방 이후의 타락이었다.
나라를 세우는 일보다
나라가 스스로를 망치지 않게 지키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너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잘 운영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익숙하게 소비하고 있는가.
권력을 감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편을 나누어 대신 변명해주고 있는가.

총은 오래 남지 않는다.
그러나 태도는 시대를 넘는다.
내가 남기고 싶은 것은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권력을 대하는 자세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권력을 먼저 의심하라.
지도자를 존중하되,
결코 맡기지는 말라.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하라.

그것이
총을 들지 않고도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다.

top_tier_1@naver.com

  • Tanya482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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