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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커지는 경찰 권한, 그 무게만큼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경찰 기관문양 (사진제공=경찰청)

이재명 대통령이 경찰의 날 80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수호하는 유능한 민생 경찰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는 이른바 ‘수사-기소 분리’ 개혁이 현실화될 경우, 경찰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의 전면에 서게 된다. 권한이 커지는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과 윤리의식, 그리고 국민 신뢰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경찰은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자치경찰제 확대, 수사권 조정, 검찰 개혁 등 제도 변화의 물결 속에서 경찰의 위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권한의 확장은 곧 국민의 감시도 강화된다는 뜻이다. 경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과거의 그림자가 여전히 국민의 기억 속에 생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이 “경찰이 권력자의 편에 섰을 때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는 유린당했다”고 언급한 것은 그런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킨 것이다.

경찰은 이제 단순한 ‘집행기관’이 아니다. 수사 개시와 종결권을 가진 준(準)사법기관으로서 국민의 생명·재산뿐 아니라 정의 실현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러나 최근 스토킹 살인, 교제 폭력, 마약 확산 등 대응 실패 사례는 여전히 ‘민생 경찰’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국민이 경찰에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검거 실적이 아니라, 예방과 보호를 아우르는 종합적 안전망의 확립이다.

‘권한이 늘어나면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지느냐’는 대통령의 물음은 결국 경찰 스스로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경찰 조직은 내부의 폐쇄성과 관행적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수사의 신뢰성은 정치적 중립성에서 비롯된다.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여론의 풍향에 휘둘리는 순간 국민의 신뢰는 무너진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공권력으로서 인권 감수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피의자와 피해자, 약자와 소수자 모두에게 공정하게 접근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민주 경찰’은 구호에 그칠 것이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찰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경찰이 진정한 개혁의 주체가 되려면, 권한 확대의 명분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확신을 보여야 한다. 정치로부터 독립된 수사, 투명한 내부 통제, 신속하고 책임 있는 대응이 그 출발점이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보다 강한 경찰은 없다”는 대통령의 말처럼, 권한은 국민의 신뢰 속에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경찰은 지금, 역사의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커진 권한은 결코 특권이 아니라, 더 무거운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공권력의 품격은 오직 책임과 절제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haileyyang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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