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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뉴노멀’의 시대를 인정해야

4월 10일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대패하며 대통령실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과 성태윤 정책실장을 비롯해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들이 11일 총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보수, ‘뉴노멀’의 시대를 인정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해찬·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홍익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보며 박수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당은 가까스로 108석이란 성적표로 개헌과 탄핵 저지선은 구축했지만 야권이 합의하면 언제라도 패스트트랙을 통해 법안을 마음대로 통과시킬 수 있는 환경이 다시 한 번 펼쳐졌다. 또한 옳고 그르든 이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불신이 드러난만큼 대통령이 강하게 밀고 나가던 여러가지 개혁 과제들이 야당의 반대를 뚫고 추진된다는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 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대패한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국민의 사고(思考)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들 기준에 맞추기는커녕 오히려 계몽하려 했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국민의힘 인재 영입 1호로 민주당 텃밭인 인천 서구갑에 출마해 고배를 마신 박상수 변호사는 11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국민의힘 영입인재들은 민주당과 진보정당 지지세가 강한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자라서, 국가와 사회가 준비해준 교육의 사다리를 타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다지며 사회 활동을 해오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인천 서구 원도심 출신인 나는 우리가 자란 동네의 아이들이 우리 때처럼 꿈을 가지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과 시혜성 복지에 기대지 않고 착실히 노력하면 노력한만큼 발전하던 시대로의 복귀를 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지역 공약도 국가가 뭘 해주겠다는 복지성 공약이 아니라 지역을 발전시켜내고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한 사다리를 회복시키겠다는 것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선거운동을 하며 박 변호사의 마음이 무거워졌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자영업자들에게 명함을 돌릴 때 “민주당은 현금성 복지를 해주는데 국민의힘은 자기들끼리 해먹느라 국민들에게 그런 것도 안해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박 변호사는 “몇 달간 7만장 정도의 명함을 돌리며 느낀 우리(국민의힘)의 선거 패인은 우리나라가 크게 변했다는데 있었다”며 “보편 복지와 현금성 복지를 바라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보수 역시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 변호사의 선거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순 없겠지만 ‘출세는 몰라도 최소한 남에게 손은 안벌리고 살려면 내가 노력해야 한다’는 국민 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파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다 보니 동조한 측면이 있지만 좌파의 전매특허인 각종 ‘무상(無償)’ 시리즈가 나온지 20년이 지났다. 때문에 어느새 ‘무상세대’가 정치 지형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는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다른 국민이나 다른 세대에 우리 책임을 떠맡기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어릴 때부터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교복,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무상으로 노트북 컴퓨터까지 주는 환경에서 자랐거나 자녀가 혜택을 보는 세대에게 미국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취임사에서 했던 말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은 과거의 국민이 아니다. 산업화 경제 성장 시기의 잣대를 들이밀어봐야 속된 말로 ‘꼰대’라는 답밖에 들을 수 없다. 이젠 대한민국에서 살고자 한다면 변화된 인식을 ‘뉴노멀’로 인정해야 한다.

보수는 그리고 국민의힘은 어떻게 해야할까. 선택은 2가지이다.

한 가지는 지금처럼 꼿꼿하게 국민들을 대상으로 ‘우리 부모 세대처럼 미래를 위해 희생하자’고 외치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그 결과는 감수해야 한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103석 획득했고, 이번 22대 총선에서 108석을 얻은 국민의힘은 그나마 개헌저지선을 확보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했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보수가 일단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과반을 뛰어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동시에 대통령까지 당선시키는 것이다. 일단 입법권·행정권을 갖고 있어야 복지의 디테일을 살려 최대한 효율적인 예산 운용을 하든, 쏠림 없이 자원 배분을 하든 뭐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같은 공약을 내놓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집행하고 관리하느냐 같은 디테일에 따라 운용의 효율성과 파급효과는 차이가 큰 법이다. 지금처럼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가까스로 넘기는 소수정당이 되면 그나마 분배정책을 미세조정해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물길을 돌리는 일조차 시도해 볼 수 없다.

변화된 국민성에 맞추어야 권력을 차지한다는 큰 물줄기는 이제 단시간 안에 되돌릴 수 없는 진실이 되었다. 다만 권력을 쥐어야 큰 물줄기를 향하는 지류(支流)나마 이런 저런 방법으로 물길을 옮기고 끊고 연결할 기회가 생긴다.

정치에 있어 ‘이기는 방법’을 깨닫는 것은 ‘이겨야 한다’는 의지만큼 중요하다.

그럼에도 지금 국민의힘에겐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도, ‘이기기 위해선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각성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jinsno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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