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시청역 참사 이후 급발진 주장 연이어
교통안전공단, ‘급발진’ 주장 차량 페달 블랙박스 분석결과 공개
국토부, 완성차 업체에 페달 블랙박스 장착 권고
정치권, 장착 의무화 법안 발의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운전자가 승용차가 놀이터로 돌진하는 아찔한 사고를 낸 후 급발진을 주장했다.
9일 부산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13분쯤 부산 사상구 엄궁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남성 A씨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놀이터 방향으로 돌진했다. 차량은 담벼락을 부수고 놀이터로 진입한 뒤에야 멈춰 섰다.
이 사고로 A씨와 동승자인 70대 여성 B씨가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당시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어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A씨는 사고 직후 경찰에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고 차량이 급발진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박스에는 사고 직전 A씨가 당황해하는 음성이 녹음된 것으로 전해졌다.
방문객으로 아파트를 찾은 A씨는 아파트 단지에 진입한 후 약 50m가량을 직진으로 주행한 뒤 그대로 놀이터 담벼락을 들이받았다.
경찰은 급발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폐쇄회로(CC)TV 영상과 블랙박스 등을 확인했을 때 차량은 시속 30㎞ 수준의 비교적 빠르지 않은 속도였고 사고 직전 차량이 갑자기 가속되지도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다가 담벼락을 들이받고 멈추어 설 때 브레이크 등이 들어왔다”며 “차량 EDR(사고기록장치)을 분석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밤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질주 후 인도에 있는 시민들을 차로 쳐 6명 사망, 3명 부상이란 참사를 낸 68세 운전자 차모씨도 경찰 조사에서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가해자를 지난 9일 방문 조사한 경찰은 “(차씨가)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며 급발진을 재차 주장했다고 브리핑했다.
하지만 지난 5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공개한 급발진 주장 사고 사례 분석에 따르면 운전에 능숙한 운전자도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서울에서 주택가 담벼락을 들이받은 뒤 급발진을 주장한 65세 택시 운전자의 차량 페달 블랙박스 영상 분석을 통해 운전자의 착각이 큰 사고로 이어짐을 확인했다.
지난해 11월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전기 택시가 주택가 담벼락을 들이받아 운전자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조사에서 운전자는 우회전하던 중 급발진이 발생해 브레이크를 여러 번 밟았지만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택시에 설치된 페달 블랙박스를 판독한 경찰의 결론은 엉뚱하게 나왔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라고 생각한 것은 실제 가속페달이었던 것이다. 웆너자는 우회전한 뒤 약 3초간 30m를 달리면서 가속페달을 6번 밟았다. 이후 차량은 119m를 직진해 담벼락에 약 시속 61km로 충돌했다.
연이은 고령 운전자들의 급발진 사고 주장에 정부도 ‘페달 블랙박스’ 의무 설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국내외 완성차 제조사에 출고 시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권고할 계획이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해 10월에도 제조사들에 설치를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완성차 제조사들은 페달 블랙박스 설치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고기록장치(EDR) 등으로 사고 원인을 분석할 수 있고, 블랙박스 설치를 위해선 자동차 설계를 변경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은 이날 자동차 제작·판매자가 의무적으로 신차에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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