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계 정당의 이름은 꾸준히 바뀌었지만 독특한 위치에 있는 내부 정파가 바로 ‘김근태계’ 이다.
김근태계 의원이 주축이 되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민평련)’이며 현역 설훈, 홍익표, 이인영, 우원식, 인재근 의원 등이 속해 있다. 현역은 아니지만 임종석, 노영민 전 의원도 범 김근태계로 분류된다.
그동안 민평련은 당내 갈등 과정마다 스윙보터 혹은 조정자 역할을 톡톡히 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증명해왔다. 스스로 당내 주류에 나설 세력은 안되지만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영향력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근태계 의원 대부분 친명이 아닌 반명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재명 대표의 서슬퍼런 칼도 이쪽을 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 대표는 병립형 선거제가 아닌 준연동형 선거제를 선택해 자기 사람을 국회로 불러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의 민주당 참패가 뼈 저리게 아픈 상황인데 의원 자리까지 범 야권에 뭉텅 잘라 내주어야하니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내 계파 중 이젠 지리멸렬해진 김근태계가 타깃이 된 모양새다.
최근 이 대표가 서울 도봉갑 3선의 인재근 의원을 만나 불출마를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일단 인 의원이 요청을 받아들여 14일 불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분 좋게 수락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인 의원은 민주당 공관휘 관계자들로부터 공천이 어렵단 취지의 말을 여러 차례 전달 받았고, 이 대표와 담판을 위해 만남을 갖었으나 결과적으로 결론은 불출마였다.
인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후임으로 김근태계 인물을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당의 선택은 2019년 이재명지키기 범국민대책위에 속해 활동한 친명 김남근 변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남근 변호사는 2021년 일명 ‘LH사태’라 불리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부동산 투기 사건을 폭로해 당시 재보궐선거의 더불어민주당 참패를 불러오는 단초를 제공했고, 이때의 참패는 상임선대위원장이었던 이낙연 대망론을 주저 앉히고 결국 이재명 대표가 2022년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인 의원에 대한 불출마 강권에 대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선배, 중진급 후보자들에게, 새로운 후배들에게 정치입문 길 터달라는 당부의 취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결과적으로 이 대표가 자기 사람으로 당을 재편한다는 야심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비추어진다.
이미 민주당 내 친명 그룹은 이구동성으로 제일 약한 고리라고 보이는 김근태계의 핵심 중 하나인 이인영 의원의 불출마를 종용한 바 있다.
이재명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윤용조 전 당대표실 부국장은 지난달 20일 성명서를 통해 “과감한 선수교체로 이어져야 한다”며,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 전 비서실장, 이인영 의원의 용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친명계 원외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지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장관급 이상 역임한 중진들도 당을 살리는 길에 동참하길 정중히 요청한다”고 논평했다. 김근태계로 분류되는 3선 김민기 의원이 19일 갑작스럽게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나온 발표였다.
서울 중구·성동구 갑에 출마 선언을 한 임종석 전 실장, 청주시 상당구 출마를 공식화한 노영민 전 실장은 중량감이 있는 인물이다보니 비판의 강도가 더욱 세다.
민형배 전 의원, 현근택 민주연구소 부원장 등이 속한 더불어민주당 친명계 조직인 ‘민주당혁신행동’은 지난달 12일 “임종석, 노영민 두 전직 비서실장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발탁한 진실부터 밝히고 출마하라”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윤석열 정권 탄생에 기여한 인사들이 총선에 연이어 출마하는 황당한 일이 이어지고 있다”며 같은 당 소속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재명 대표의 용인이 없다면 도저히 있기 힘든 입장 표명이다.
실제 김근태계는 대부분 다선의원이다. 다가오는 총선에 새로운 사람을 등용함으로써 분위기를 일신하겠다는 듣기 좋은 명분에 적용시키기도 딱 좋은 대상 그룹이다. 하지만 많은 다선의원 중 분위기 쇄신용으로 불출마를 종용하는 대상을 주로 반이재명 그룹에서만 쪽집게로 집어낸다는 느낌을 버리기 힘들다.
친명계 세력이 강한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아마도 이 대표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거나 아니면 이들이 이 대표에 대한 심기경호를 너무 잘 수행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주 타깃이 인지도가 높고 후원세력도 있기에 언제라도 이 대표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거나 비토 세력이 될 법한 인물이라는 점과 결국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이 대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양성이라고 하는 것이 정당이라는 하나의 구조 속에서 다양하게 표출되고 수렴하고 조정돼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 활동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양한 의견들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것들이 은폐되거나 억압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악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대표가 작년 3월 김근태계 모임인 민평련 의원들과 만나 나눈 대화 내용 중 일부이다. 워낙 좋은 말만 많이 하는 이 대표인지라 기억의 저편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제 국민들은 이 대표가 다른 사람들 시키지 말고 본인 입으로 공개적으로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 놓길 고대하고 있다. 누군 되고 누군 안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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