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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유라시아 한국학회’ 창립 총회를 준비하며

2014년 출범한 ‘중앙아시아 한국학교수협의회(이하 협의회)’는 2026년 6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기묘국제대학교’에서 개최된 제14회 ‘중앙아시아 한국학학술대회(이하 학술대회)’를 끝으로 지난 10여 년의 여정을 매듭짓고, 2026년 11월 10~1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카자흐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학교’에서 ‘중앙유라시아 한국학회(이하 ‘학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확대 개편하여 창립 총회 및 워크숍을 개최하고자 한다. 행사에서는 ‘학회’ 비전선포식, AI 및 K-콘텐츠 활용 교수법 강연, 글로벌 e-스쿨 우수사례 발표, 한국국제교류재단(이하 KF)의 장학생 동문회 및 워크숍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중앙유라시아 한국학회’ 창립 총회를 준비하며
백태현(중앙아시아 한국학교수협의회 명예회장/창립 총회 준비위원장)

‘학회’ 창립 총회 준비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필자는 학회의 전신인 협의회의 창립, 정착과 발전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다. 무엇보다 그동안 협의회와 학술대회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현지 한국학(Korean Studies) 연구자와 교육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히, 협의회의 회장단 임원으로 조직을 체계화하고 매년 개최되는 학술대회를 이끌어 온 박 넬리 교수, 세리쿨로바 미나라 총장, 장호종 교수, 고효운 교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협의회의 출범과 현지 한국학 연구와 교육의 기틀을 다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후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은 KF에도 깊이 감사를 드린다. 이런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제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앙유라시아(Central Eurasia)’ 전체를 품는 담대한 도약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유라시아(Central Eurasia)’는 기존의 지리적 구분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의 역동적 연계성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핵심 개념이다. 현대 사회의 지정학적 변화와 급속도로 다변화된 글로벌 학술 네트워크는 우리에게 보다 넓은 시각과 확장된 틀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학회’가 지속 가능한 학술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중앙유라시아 대륙과 한국을 잇는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추진해야 할 목표는 자명하다. ‘학회’는 기존의 개별 국가와 대학 단위로 흩어진 한국학 교육 및 연구 인프라를 통합하고, 지역 간 역량 불균형과 지식 격차를 해소하여 초국적 시대에 부합하는 지속 가능한 학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래에 ‘학회’ 창립의 주요 의의와 그 시대적 필요성, 나아가 ‘학회’가 지향하는 비전과 발전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중앙아시아’에서 ‘중앙유라시아’로의 지리적·학문적 스펙트럼 전환의 필요성이다. 이것은 곧 초국경적 융복합 연구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과 연결된다. 역사적으로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 문명이 교차하고 융합된 거대한 유목·정주 문명권을 이루어 온 중앙유라시아는 학술적으로 훨씬 확장된 유기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학회’ 명칭에 ‘중앙유라시아’를 도입한 까닭은, 기존의 지리적 획일성에 갇히지 않고 중앙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연결하는 학문적·문화적 네트워크를 포용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학회’는 중앙아시아의 범주를 넘어 중앙유라시아 전역의 한국학 연구자와 교육자들을 잇는 허브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학회’ 출범 초기에는 우선적으로 기존 중앙아시아 5개국과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하는 초국가적 한국학 학술 플랫폼 구축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둘째, 대륙의 심장부(Heartland)에서 펼쳐 나갈 한국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변환이 요구된다. 한국과 중앙유라시아 국가 간의 정책 수립, 경제 협력, 학술·문화 교류 시 전문적인 지식과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민간 학술 자문 플랫폼의 구축은 시대적으로 절실히 요구된다. 중앙유라시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 주도권을 좌우하는 ‘세계의 심장부(Heartland)’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중앙유라시아 지역은 19세기 영국과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 패권을 두고 벌인 ‘그레이트 게임’에 비견되는 강대국들의 ‘신(新) 그레이트 게임(The New Great Game)’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앙유라시아는 미·중·러·EU 등 세계적 패권이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글로벌 물류·에너지 네트워크의 중심축이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미국의 신실크로드 전략,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등이 부딪히고 협력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근래 ‘카스피해 횡단 국제수송회랑(TITR: Trans-Caspian International Transport Route)’, 일명 ‘중앙회랑(Middle Corridor)’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 물류 지형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물류 수송로로 부상하고 있다. ‘중앙회랑’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2026년 미국-이란 전쟁 이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진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기존 수송로들의 한계를 극복할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닌 대륙의 심장부에서 ‘한국’과 ‘한국학’을 논하는 것은, 한국과 중앙유라시아를 잇는 학술 공공외교의 핵심 거점을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도 중앙아시아 나아가 중앙유라시아와의 적극적 교류 협력을 위한 큰 틀이 마련되었는데, 2026년 9월 15~16일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그것이다. 이번 회의는 대륙을 향한 외교 지평을 넓히는 정치·외교적 대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한국도 대륙의 심장부(Heartland)인 중앙아시아와 전략적 연대를 맺음으로써 외교적 지평과 전략적 자율성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강대국(미·중·러)의 영향력이 충돌하는 중립적 가교 지대에서, 한국은 ‘상생과 포용의 파트너’로서 보다 평화적이고 건전한 다자 협력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계기로 교육·학술·문화 교류 정책이 더욱 활성화될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통해 중앙유라시아 사회 전반에서 한국만이 가지는 학술적·문화적 요소들이 확산될 것이다. 우리 ‘학회’가 이같은 ‘한국적 요소’들을 ‘한국학’이라는 실천적 틀 안에서 체계화해 나갈 때 한국과 중앙유라시아의 상호 이해 및 평화 공존이라는 공동의 가치는 보다 빨리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초국적 시대에 부합하는 학제 간 융합의 장을 마련하고 중앙유라시아의 자생적 한국학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앙유라시아 지역에서의 한국학은 이 지역의 현실적 필요와 자생력에 뿌리를 둔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으로 거듭나야 할 때이다. 중앙유라시아 현지의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보고, 언어학·문학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정치·경제·사회·디지털 기술(AI)까지 아우르는 융복합 연구는 더 이상 시기를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약 130여 개 민족이 공존하고 있는 중앙유라시아 지역은 언어학(알타이어족, 튀르크어/이슬람/슬라브 문화권), 역사학, 문화인류학, 이주사, 디아스포라 연구 등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소중한 연구 공간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중앙유라시아 지역은 소위 ‘공부할 거리’와 ‘미래 먹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우리 ‘학회’는 단일 학문의 한계를 뛰어넘는 학제 간 융합의 장을 활발히 펼쳐 갈 것이고, 나아가 차세대 융복합 연구의 거점을 마련해 가는 것 역시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다. 현지의 차세대 신진 연구자들이 자국어와 한국어, 러시아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글로벌 학계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최적의 연구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차세대 학문 후속 세대를 육성하고 이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는 일이야말로 새롭게 출발하는 ‘학회’가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중앙유라시아 대륙 각국의 연구자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한국을 탐구하고 학문적 지식을 공유할 때, 비로소 자생력을 갖춘 지속 가능한 한국학이 완성될 것이다. 

이같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앙유라시아 한국학의 현주소(교육, 연구, 정책 등)를 분야별로 심층 진단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역 간 지식 격차를 해소하고 한국학 연구 및 교육 역량 강화를 위한 최우선적 과제이다. 그리고 AI 및 K-콘텐츠를 활용한 최신 교수법 강연, 글로벌 e-스쿨 우수사례 공유, 공동 커리큘럼 개발 등을 추진하여 실천적인 한국학 교육 발전 방안을 모색해 가려고 한다. 나아가 현지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된 비동기형 학습 콘텐츠 제작 및 클라우드 기반 학술 자료 통합 저장소를 마련하여 디지털 정보 격차를 극복해 나갈 것이다.

넷째, 문명 교류의 유산과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재조명이 요구된다. 이 지역은 1937년 강제 이주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척박한 땅을 개척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 낸 우리 민족, ‘고려인’ 50만여 명이 살아가고 있는 역동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오늘날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단순한 과거의 역사적 잔재나 수동적인 이주민 집단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 이들은 중앙유라시아 각국에서 독자적인 정체성과 문화를 형성하며 지역 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앙유라시아를 잇는 소중한 가교이자 가치 있는 문화·사회적 자산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디아스포라의 관점과 지경학적·지정학적 차원에서 고려인 사회를 복합적으로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우리 ‘학회’는 중앙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가치를 바로 세우고, 이들의 삶과 경험을 한국학의 중요한 영역으로 포섭하여 학문적 깊이를 더해 나가고자 한다.

현재 중앙유라시아 지역은 다양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 구성원들은 상호 경쟁도 하지만 때로는 전략적 협력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제 한국도 이 지역 변화에 대한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대응책을 모색하고, 나아가 중앙유라시아 지역이 요구하는 한국만의 ‘틈새시장’을 개척해 가야 한다. 우리 ‘학회’의 궁극적 목적은 “중앙유라시아 대륙의 역사적·지정학적 맥락에 기반한 자생적 한국학 연구 및 교육 시스템을 확립하고, 초국경적 학술 네트워크와 차세대 학자 양성을 통해 한국과 중앙유라시아의 상호 이해 및 평화 공존에 기여한다.”는 것에 두고 있다.

2026년 11월 카자흐스탄에서 개최될 ‘학회’ 창립 총회는 중앙유라시아 한국학의 새로운 100년을 여는 역사적 출발점이 될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이 뜻깊은 여정에 한국과 중앙유라시아, 그리고 전 세계 한국학 연구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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