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때로는 같은 실수를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관세 인상 압박을 재개하고, 쿠팡을 둘러싼 사법·규제 문제에까지 공개적으로 개입하려는 태도는 한미 관계의 성격을 다시 묻게 한다. 동맹을 대하는 자세인지, 힘의 우위를 앞세운 일방적 요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적 재기 과정에서 한국 기업, 특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매개로 한 국제 협력의 경험은 개인적 인연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이는 한국이 세계 경제의 주변부가 아닌 실질적 파트너로 기능해 왔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럼에도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언행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존중을 찾기 어렵다. 배은망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제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제공해 온 신뢰와 협력의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1871년 강화도에서 벌어진 신미양요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무력 시위를 통해 조선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지만, 결과는 군사적 승리에 그쳤을 뿐 외교적 성과는 없었다. 조선은 패배했으나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문은 더 굳게 닫혔다. 압박할수록 저항이 강해지는 민족적 특성은 이 역사적 경험 속에 분명히 각인돼 있다. 만약 당시 미국이 총포가 아닌 외교와 존중으로 접근했다면, 일본의 강화도조약 이전에 수교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늘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관세 인상과 규제 압박은 협상을 진전시키기보다 반감을 키운다. 특히 쿠팡 사안을 두고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국의 사법 절차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듯한 태도는 부적절하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기업인 이상, 국적과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법과 사법 체계를 따라야 한다. 미국이 진정으로 동맹을 중시한다면, 관세 인하를 통해 대화의 조건을 복원하고 쿠팡 역시 한국 사법당국의 판단에 성실히 임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다.
문제의 본질은 경제가 아니라 국격이다. 규제와 사법 집행을 ‘차별’이나 ‘검열’로만 규정하는 시각은 한국을 성숙한 민주국가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상호 존중을 토대로 한 한미 동맹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
외교는 힘의 과시가 아니라 신뢰의 축적 위에서 작동한다. 『주역(周易)』 계사전에 나오는 “강불가구(剛不可久)”, 지나치게 강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경고는 오늘의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871년 신미양요에서 미국은 군사적으로 승리했지만 외교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오늘날 관세 압박과 사법 문제를 통상 카드로 결합하려는 시도 역시 같은 오류를 반복할 위험이 크다. 압박으로 얻은 양보는 일시적일 뿐이며, 신뢰를 해친 동맹은 위기 앞에서 취약해진다.
신미양요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외교를 비추는 거울이다. 미국이 그 거울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미 관계의 내일이 달라질 것이다. 동맹은 압박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주체다. 역사는 이미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top_tier_1@naver.com






![[기억의 시간] 나라를 되찾은 뒤,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기억의 시간] 나라를 되찾은 뒤,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54-1024x683.png)
![[사설] 위호작창의 책임, 헌법은 왜 지켜지지 않았나 [사설] 위호작창의 책임, 헌법은 왜 지켜지지 않았나](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48.png)
![[기억의 시간] 아무도 부르지 않고 지우려 했던 이름의 시간 [기억의 시간] 아무도 부르지 않고 지우려 했던 이름의 시간](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50.png)
![[사설] 책임을 피해간 기업, 시민의 선택은 더 분명해졌다 [사설] 책임을 피해간 기업, 시민의 선택은 더 분명해졌다](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53-1024x683.png)
![[사설] 이혜훈 지명 낙마가 남긴 능사능임 인사의 교훈 [사설] 이혜훈 지명 낙마가 남긴 능사능임 인사의 교훈](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58-1024x683.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