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한국대사로 임명해 도피시켰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조형우)는 11일 윤 전 대통령의 범인도피 및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자로 인식한 상태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거나 저지하려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이 구체화되거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는 구체적 인식 아래 공수처의 수사를 정면으로 저지·방해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기소된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시원 전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 장호진 전 외교부 차관, 심우정 전 검찰총장(당시 법무부 차관)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다만 재판부는 2023년 7월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 초동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이 전 장관에게 전화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고 질책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은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이 전 장관의 주호주 대사 임명이 범인도피 행위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인도피죄의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면 국민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범인도피죄는 방법에 제한이 없어 처벌 범위가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며 “겉으로 보기에 도피 행위에 해당한다고 해서 무조건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9월부터 이 전 장관을 대사 등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당시 공수처가 이 전 장관에 대해 실질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또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할 당시 그의 출국금지 사실을 알지 못했던 만큼, 출국금지 조치를 무력화하거나 수사를 피하게 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의 주호주 대사 임명이 정책적·정무적 판단에 따른 인사였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헌법 73조에 따라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자신의 정책적·정무적 판단에 따라 이 전 장관을 한국과의 국방협력이 중요한 주호주 대사로 임명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전임 주호주 대사가 최대 2023년 6월까지 근무할 수 있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윤 전 대통령이 기존 대사를 무리하게 교체하고 이 전 장관을 후임으로 ‘꽂아 넣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으로 공수처 수사가 방해됐다는 채상병 특별검사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주호주 대사로 재직하는 동안 소환조사에 응하는 것이 법령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거나 사실상 현저히 곤란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 전 실장과 박 전 장관 등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이 전 장관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윤 전 대통령과 공모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소속 공무원들에게 부실한 인사검증이나 출국금지 해제 등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고 볼 만한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선고 직후 “특검은 이제 무리한 형사재판을 이어가기보다 이번 무죄 판결의 법리와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판결에 승복하고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전 대통령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진 2023년 9월께 법무부와 외교부, 국가안보실 등 대통령실 인사들과 공모해 관련 의혹을 은폐할 목적으로 이 전 장관을 주호주 대사에 임명하고 출국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전 장관과 심 전 총장은 범인도피 및 직권남용 혐의로, 조 전 실장과 장 전 차관은 범인도피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이 전 비서관은 범인도피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특검은 지난 7월 결심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조 전 실장과 박 전 장관에게는 각각 징역 3년을, 이 전 비서관과 장 전 차관, 심 전 총장에게는 각각 징역 2년을 구형했다.










